로이 클라크의 기록은 앞으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349경기에 뛰며 73골을 넣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1947년 3부리그에 있던 카디프 시티에서 그는 승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시즌이 남아있을 때에 2부리그 우승팀이었던 맨체스터 시티는 12만 파운드에 그의 영입을 시도했으며 카디프는 이를 받아들여 시즌이 끝나기 전에 영입을 확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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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는 번리와 함께 1부리그로 승격하였으며 2부리그도 아직은 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뉴포티 카운티와의 경기는 메인로드에서 진행이 됐고 클라크의 고향이기도 했던 팀을 상대로 5-1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1946/47시즌 마지막 경기였고 2개의 리그에서 2게임 연속으로 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7/48시즌 시작과 함께 첫 번째 1부리그 경기에서 3경기를 각각 다른 리그에서 뛴 진기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카디프에서 1946/67 시즌 3부리그 경기, 맨체스터 시티에서 1946/47시즌 2부리그 마지막 경기와 1947/48시즌 첫 경기)
맨체스터 시티에서 치른 1부리그 첫 경기에서는 울버햄튼을 상대하였고 첫 골을 성공시키며 메인로드에서의 4-3 승리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웨일즈 국가대표팀에서 22번의 출전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11년 동안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클라크는 아쉽게도 1955년 FA컵 결승전에 부상으로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버밍엄을 상대로 다시 한 번 FA컵 결승전에 올라가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58년에 33살이 된 클라크는 스톡포트 카운티로 이적하였지만 1966년에 메인로드 근처에 있었던 ‘시티 소셜 클럽’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기 위해 다시 메인로드로 돌아왔습니다.
25년 동안 시티 소셜 클럽의 매니저로 일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운영되고 있는 ‘전직 선수 협회(The Former Players Association)’를 패디 파간, 로이 리틀과 함께 창립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