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팬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장소였으며 클럽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소셜클럽은 클럽의 서포터즈들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장소였습니다. 메인로드 코너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경기장의 높은 조명타워 옆에 있어 왜소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3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며 유명 배우, 뮤지션, 밴드 등이 거쳐갔습니다.

이야기:

소셜클럽은 일주일 내내 문을 열었지만 경기가 있는 날에는 본연의 장소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상당히 큰 규모였고 많은 팬들이 모이며 당시에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66년, 맨체스터 시티 선수였으며 팀에서 은퇴를 했던 로이 클라크는 소셜 클럽의 매니저로 일하였고 25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딸 모두 소셜 클럽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습니다.

소셜클럽의 숨겨진 정신은 선수, 클럽 관계자, 서포터즈가 유대감을 만드는 장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고 스포츠 기자였던 아서 호프크래프트는 그의 저서인 The Football Man(1968)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그런 장소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클럽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당시 맨체스터 시티는 다양한 바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메인 바 구역, 칵테일 바, 라운지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곳에서는 샌드위치와 파이를 먹을 수 있었고 따뜻한 식사도 제공되었습니다.

소셜 클럽의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가족 밴드가 연주하였고 배우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에 밥 몽크하우스, 데이브 알렌, 버나드 매닝, 리틀 앤 라지, 더 뉴 시커, 브라더후드 오브 맨 등이 시티팬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도 크리스마스에 가끔 클럽에 들렀으며 마이크 서머비, 토니 북, 조 코리건, 등은 알라딘의 한 부분을 맡으며 무언극을 펼쳐보이기도 했습니다.

경기장 담당 헤드였던 스탠 깁슨은 무대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 아내와 함께 종종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소셜 클럽의 바로 뒷편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가 소셜클럽의 부흥기였으며 90년대까지 소셜클럽의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치데이에는 팬들조차 찾아오지 않게 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메인 로드를 떠나기로 구단은 결정했고 결국 소셜 클럽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셜클럽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었지만 ‘메인 구역’ 주거 계획에 따라 철거가 이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그 자리에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시티팬들은 경기장 근처에 그들이 모여드는 장소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Mary D라는 장소가 에티하드 스타디움 맞은 편에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소셜클럽은 많은 세월 동안 성공적이었으며 라이벌 축구팀 팬에게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장소는 시티팬의 가슴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헬렌의 벨과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시티에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며 시티의 DNA에 남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