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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메인로드- 북부의 웸블리

The Story of: 메인로드- 북부의 웸블리
80년 동안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었던 메인로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추억과 의미로 가득 찬 메인 로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메인 로드는 지어질 당시 120,000석의 좌석을 갖는 것을 포함하여, 훌륭한 클럽이 되려는 시티의 오랜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서 메인 로드의 스토리를 함께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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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시작

1923년 8월 18일, 맨체스터 시티가 하이드 로드에서 마지막 홈경기를 치른 후, 구단은 하이드 로드에서 서쪽으로 2마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동쪽으로 약 3마일정도 떨어진 곳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습니다.
5,500 파운드의 가격으로 구입한 16.25 헥타르 면적에 경기장을 디자인하는데 건축가 찰스 스웨인이 선정되었으며, 그라운드의 초기 배치는 10,000석 규모의 덮개 그랜드 스탠드와 다른 세 면의 오픈 테라스, 그리고 모서리를 연결하는 완만한 곡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비록 필드라인의 전체 길이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층에 10,000개의 좌석이 있는 하나의 그랜드 스탠드가 지어졌습니다. 나머지는 열려 있고, 총 20마일 길이의 콘크리트 계단을 설치했습니다. 수용능력의 추정치는 80에서 100,000까지였으며 총 공사비는 거의 20만 파운드로 그 당시에는 매우 큰 액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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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용능력으로 인해 '북쪽의 윔블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 당시 메인 로드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가끔 사용하던 웸블리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경기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장이었던 W. 쿤디프는1923년 8월 25일에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2-1로 이긴 1부 리그 개막전을 60,000명의 관중과 함께 관람하면서 시티의 새로운 시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메인 로드의 명칭


도그 케넬 레인은 경기장 명칭이 메인 로드로 바뀌기 전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메인 로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메인 법이라는 이름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메인 법(Maine Law)은 1851년 6월 2일 미국 메인 주에서 통과된 알코올 판매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메인 법은 미국에서 번성했던 금주 운동의 첫 번째 법 시행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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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운동은 알코올 소비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이었으며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알코올이 건강, 성격, 가족 생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면서 알코올 중독을 비판하고 알코올 없는 생활을 장려하였습니다.
메인 법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고 맨체스터의 영국 동맹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술 판매를 금지한 단체는 맨체스터의 한 거리를 기반으로 19세기 말에 번창하였습니다.


럭비의 고향,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음악


메인 로드는 1938년에서 1956년 사이에 럭비 리그 챔피언십에서 11번의 결승전을 개최하면서 스포츠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리고 1996년 위건과 배스 간의 첫 크로스-코드 경기를 개최하면서 럭비 역사상 한 획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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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외에도, 음악은 이 유명한 땅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곳에서 공연을 한 록 스타들은 그들의 중요한 날을 위한 기념품으로 구단으로부터 City셔츠를 받았습니다.
악셀 로즈, 존 본 조비, 짐 커는 모두 유명한 하늘색을 입었으며 아마도 가장 유명한 City 팬인 노엘과 리암 갤러거는 오아시스가 1996년에 그곳에서 홈커밍 쇼를 하기 전에 이미 셔츠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역 팀들의 홈구장


전쟁이 끝난 후 올드 트래포드가 폭탄 피해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메인 로드는 상대팀들의 홈경기장이 되며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경기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인 로드가 꽉 차게 되며 관중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시티와 유나이티드 모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경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1946년 더비와 버밍엄 사이의 컵 준결승 재대결에서 80,407명의 관중이 들어섰던 것은 주중에 열린 경기에서 낳은 최다 관중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시즌, 시티는 2부리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유나이티드는 1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285만 명의 관중이 메인 로드에 들어섰는데, 이는 그 어떤 리그에서도 세워지지 않은 기록이었습니다.
메인 로드에서 가장 많은 관중의 기록은 두 번 세워졌고, 첫 번째는 1934년 스토크 시티와의 FA컵 경기에서 84,569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섰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1948년 1월 1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널과의 경기를 할 때 총 83,260명의 관중이 모였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성공했던 경기였습니다.

WATCH: Maine Road tribute for legendary groundsman

작별


2003년 5월 11일은 맨체스터가 메인 로드가 마지막 경기를 치른 날이었습니다.
숀 고터가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기 때문에 감정적인 기분이 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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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가 에티하드 경기장으로 옮기기 전에 마지막 경기를 옛 홈에서 치렀기 때문에 그 날은 모든 팬들에게 감격적이었고 관중들은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실뱅 디스틴의 완장을 대신 찬 숀 고터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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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맨체스터 시티는 마지막 경기에서 1대 0으로 졌지만, 경기장에 들어선 팬들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표를 구하지 못한 수백 명의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 경기장과 작별을 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We are sailing” 응원가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게 됐습니다.
"우리는 City입니다. Super City이며 메인 로드에서 온 슈퍼 시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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