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일본과 한국을 찾았던 투어에서도 아시아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아시아에서 맨시티를 응원하는 팬들의 중심에는 중국 팬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쑨지하이가 있었다. 쑨지하이는 수비와 미드필드를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쑨지하이는 경기장에서 화려함보다 성실함이 돋보이는 선수였으나 중국에서는 슈퍼스타였다.
CITY+ 구독하고 아시아 투어 2026 경기 시청하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중국은 오랫동안 프리미어리그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왔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유럽 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중국 선수는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2002년 쑨지하이가 다롄 스더를 떠나 이적료 200만 파운드에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첫 아시아 선수로 합류했을 때, 중국 전역은 큰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쑨지하이는 1998년 크리스털 팰리스 임대 시절 판즈이와 함께 잉글랜드 무대를 밟은 최초의 중국 선수이기도 했다. 쑨지하이는 마침내 잉글랜드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당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노리던 맨체스터 시티의 일원이 됐다.
이후 첫 몇 달 동안 안정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케빈 키건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와 함께 디비전 원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팀의 프리미어리그 복귀에 힘을 보탰다.
그해 여름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열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중국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다시 동아시아를 찾았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당한 이른 부상으로 남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새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로 복귀한 쑨지하이는 곧바로 키건 감독의 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자리 잡았다. 맨시티가 리그 9위를 기록하고 메인 로드에서 열린 마지막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는 등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가운데, 쑨지하이는 언제나 믿음을 주는 존재였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쑨지하이는 킵팩스 스탠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일종의 ‘컬트 히어로’로 자리매김했다.
키건 감독의 팀은 언제나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했고, 때로는 수비의 안정성을 희생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니콜라 아넬카, 숀 라이트필립스, 알리 베나르비아 같은 공격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지만, 수비진은 그만큼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했다.
왼쪽에는 니클라스 옌센이, 중앙에는 실뱅 디스탱, 리처드 던, 스티브 하위가 버티며 맨시티는 탄탄한 수비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려하면 수비수들에게는 무엇보다 용기와 대담함이 요구됐다. 쑨지하이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 기준으로 압도적인 체격을 갖춘 선수는 아니었으나, 몸싸움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후 맨시티에서 큰 족적을 남긴 풀백들과 마찬가지로 쑨지하이는 언제나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여기에 침착한 볼 컨트롤과 뛰어난 기술까지 갖춘 그는 높은 지역에서도 효과적인 활약을 펼쳤고, 때로는 미드필더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다.
2002년 9월 맨시티 이달의 선수에 선정된 쑨지하이는 버밍엄 시티와의 2-0 승리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한 최초의 동아시아 선수가 됐다.
그 득점 장면에서도 쑨지하이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오른쪽에서 직접 공을 몰고 올라간 뒤 마르크비비앵 푀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푀는 이를 측면의 에얄 베르코비치에게 내줬고, 베르코비치의 크로스를 쑨지하이가 페널티 지점에서 헤더로 마무리했다.
이 장면은 쑨지하이 특유의 투지와 함께, 풀백임에도 과감하게 전진해 공격에 가담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003/04시즌, 맨시티가 에티하드 스타디움(당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옮긴 첫해에도 쑨지하이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는 UEFA컵 6경기 가운데 5경기를 포함해 공식전 42경기에 출전했다.
팀은 전 시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냈으나, 쑨지하이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키건 감독의 팀이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4/05시즌 초반 당한 큰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공식전 7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5/06시즌에는 건강을 되찾아 스카이블루 유니폼을 입고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쑨지하이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4경기를 소화했다. 당시 맨시티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 체제에서 키건 시절과는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득점은 훨씬 줄었으나,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이뤄냈다.
맨시티는 38경기에서 단 48실점만 허용하며 리그 15위를 기록했고, 상위 8개 팀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수비 기록을 남겼다. 리처드 던이 구단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지만, 쑨지하이를 비롯한 수비진의 든든한 지원 역시 그 성과를 뒷받침했다.
중국 국가대표였던 쑨지하이는 이후 두 시즌 더 맨시티에서 활약했으나, 피어스 감독의 두 번째 시즌과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 부임 이후에는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6년 동안 공식전 151경기를 소화한 그는 2008년 여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중국으로 돌아갔고, 2016년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쑨지하이는 중국 축구가 배출한 가장 성공적인 해외 진출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리그 전체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중국은 물론 맨체스터에서도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은퇴 후에 쑨지하이는 스포츠 데이터 기업 ’하이취 스포츠(HaiQui Sports)’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