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사발레타는 2010년 첫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이미 2년을 맨체스터 시티에서 뛴 상태였습니다. 이미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그가 구단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들 중 한 명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보다 더 흥미로운 미국의 도시는 많지 않을 것이며 약 300만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평화로운 마을인 아레시페스에서 사발레타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

12살에 산 로렌소에 합류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구단 숙소로 옮기기 전 축구와 승마는 그가 마을에서 매일 즐겼던 것들이기도 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그가 살았던 세 개의 메이저 도시 중(현재는 런던 포함 4개) 하나이며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레시페스에서 자랐어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200km정도 떨어져있고 25,000명 정도 사람이 사는 일반적인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이예요. 여전히 제 가족들이 거기에 살고 있고요.”

“부모님의 첫 집이었고 아버지하고 새 어머니가 그곳에 거주하고 있어요. 크진 않지만 매우 좋고 필요한 것은 전부 있어요. 괜찮아요.”

1950년 도시 지위를 얻은 아레시페스는 현재 목장과 농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사발레타는 그곳에서 사업가인 아버지 호르헤와 2000년 별세한 어머니 라우라, 그리고 형제들과 지냈었습니다. “지안루카는 제 이복형제이고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재혼하셨어요.”

“지안루카는 다섯살이고 20년 차이가 나죠! 에스파뇰에서 선수로 뛰며 스페인에서 지낼 때 지안루카가 태어났어요. 처음에는 멀리 살면서 일년에 한 번 정도 봤기 때문에 유대감을 갖기 어려웠어요.”

“아르헨티나에는 1년에 10~15일 정도 머물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제가 누군지 알려주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매우 가까워요. 말도 잘하고 전화로 많은 대화를 나누죠. 그의 큰 형이 아르헨티나 대표로 뛴다는 사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발레타의 조부모님들은 더 깊숙한 시골에 사셨고 언덕 근처에 거주하였습니다. 그곳에 놀러가서 넓은 목장에서 승마를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사발레타는 그 시간을 많은 애정과 함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에 조부모님들을 몇 주 동안 보러 갔었어요. 제가 타곤 했던 말을 소유하고 계셨고 그곳에 가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여름은 길고 더우며 아이들에게는 그곳이 정말 완벽한 곳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목장의 규모가 조부모님들에게 버거웠고 결국에는 그곳을 임대해 주었죠. 그리고 마을에 가까우면서 규모가 좀 작은 곳으로 이사를 하셨어요. 제가 은퇴했을 때 그곳을 인수하길 바라고 있어요. 이상적인 시나리오죠. 왜냐하면 가족들에게는 특별한 장소를 계속 가지고 있게 되는 거니까요.”

사발레타의 축구 사랑은 어릴 적부터 절대 떨어지지 않았고 아레시페스에서 항상 공과 함께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길거리에서 축구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정원이나 공원에서도 말이죠. 방과 후에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곳 어느 곳에서든 경기를 했어요. 친구들을 부르고 축구를 했죠. 살기에 정말 안전하지만 10살에 스카우트 됐을 때 그곳을 떠나야만 했어요.”

“그곳에는 축구팀이 적었고 주니어 팀 코치님은 도시에서 제 행운을 시험해 봐야 한다고 말했었죠. 아버지도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에 동의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산 로렌소에 12살의 나이로 합류했었어요. 보카 후니오르스나 리베르 플라테와 같은 팀에서는 한 자지를 차지하는 게 어려웠었고 아버지는 더 작은 구단에 가서 더 좋은 기회를 갖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저에게는 큰 변화였고 구단이 소유하고 있는 한 집에서 제 나이 또래 애들과 같이 지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게 할 수 있는 만큼의 큰 예산을 갖고 있지 않았죠.”

“음식은 항상 같았어요. 스파게티, 치킨, 오렌지였고 싼 음식이었어요. 부모님은 힘들다는 것을 알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을 때마다 그곳에 계셨어요. 아버지는 다양하게 먹는 걸 허용해 주셨고 때로는 다른 음식을 먹이고자 식당에 가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행운이었어요.”

어린 나이의 사발레타에게 외출은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축구광이었던 아버지와 보카 후니오르스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경기장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친구들과 보카 경기를 봤어요. 그리고 하루는 저를 데려갔죠. 아버지 친구 중 한 분이 인데펜디엔테 팬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 날은 보카와 경기를 했는데 친구분도 경기장에 출입하였고 보카 팬이었던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 기억에 나요.”

“인데펜디엔테가 1-0으로 이겼고 골을 넣었을 때 매우 조용히 있기도 했었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스포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진짜로 좋아하는 팀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기도 해요. 그 친구분은 이를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봄보네라(보카 후니오르스 홈경기장)는 아이코닉한 경기장이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고 즐겼어요. 특히 종이로 만든 응원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말한 것처럼, 산 로렌소는 제 첫 구단이었고 훈련하러 그곳에 갔었어요. 감독님은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머물기를 원하여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죠. 봄보네라에서 두 번 경기를 했었어요. 그곳에서 팬들을 보는 건 흥분되는 일이었고 아버지가 제 경기 보는 걸 즐겨했었어요. 비록 보카 후니오르스의 유니폼은 아니었지만요. 제가 좋아했던 건 ‘클라시코’라 불렸던 리베르 플라테와 보카와의 경기에 가는 거였어요. 정말 열정적이고 흥미로운 경기죠. 제 위시리스트에 올라가 있기도 해요.”

지금 사발레타는 맨체스터에서 행복하며(인터뷰 당시) 가까운 시기에 이적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껴요. 오래 머물고 싶고요. 선수단을 보면 올해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느끼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이예요. 하지만 매 경기에서 팬들과 우리들을 위해서 싸워나가야 해요. 팬들은 많은 응원을 보내줬어요. 첫 날부터 말이죠.”

“축구는 항상 변해요. 제 열망이었기 때문에 항상 잉글랜드에 오길 바랬었죠.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뛰고 있고 정말 행복해요. 계약도 3년이 남아있죠. 지금 해야하는 건 구단에 우승 트로피를  다시 가져다 주는 거예요.”

사발레타의 다음은?

인터뷰 했던 시즌의 말미에 맨체스터 시티가 FA컵을 우승하며 35년만에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과 2014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하는데 중심축을 역할을 했고 2014년과 2016년 리그컵 우승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7년 웨스트햄으로 떠나기 전까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9년을 지내며 333경기에 나섰고 12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또한 맨체스터 시티의 레전드로 남아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