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엘라누의 이적을 바랬던 팬들이 있었으며 그 이후에 또 다른 브라질 선수가 합류했었습니다.

지오반니는 그의 익사이팅한 재능을 보여주며 시티팬들에게 바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오’라는 별명은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애칭이며 그는 첫 인터뷰에서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모국어로 인터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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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링턴과 맨체스터는 지오반니가 1980년 1월 11일에 태어났던 브라질의 아카이아카라는 작은 마을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보였으며, 그가 스타덤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보였습니다.

“제 어머니는 주부였고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어요. 8명의 자식 중에서 제가 막내였고 부모님은 저를 항상 ‘작은 기적’이라고 했죠. 왜 그랬는지 설명드릴게요.”

“형제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형은 지금 57살이예요. 거의 프로축구 선수가 될 뻔했죠. 가족들 중에서 가장 근접하게 다가갔었어요. 제 부모님은 7명의 자식이 있었고 마지막 자식이 나올 때까지 12년이 걸렸어요. 제가 탄생한 거죠! 어머니는 49살이었고 아버지는 54살이었어요. 왜 부모님들이 저를 기적이라고 했는지 알 거예요. 나이 때문이죠. 그렇게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부모님들께 기쁨이기도 했어요.”

맨체스터 시티팬들은 지오반니의 기적을 얻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그가 넣은 골은 그에게 많은 인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브라질 국가대표로는 4회의 출전 경기를 가졌으며 축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나라인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셔츠를 입고 뛰었을 때의 기분은 어떘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주었습니다.

“17살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셔츠를 입었어요. U17 대표팀 유니폼이었죠. 후에는 U-20 대표팀 옷을 입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었어요.”

“2001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 대표로 참가했고 스콜라리 감독님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저에게는 아버지아 같은 분이셨죠. 제 삶에서 많은 영감을 주었지만 경기에서 제가 필요했던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셨어요. 제 경기력에 새로운 기준을 가져다 주었죠.”

“성인팀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제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할만한 순간이었어요.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는 건 축구선수로서 가장 큰 꿈이기도 하니까요.”

그 꿈은 같은 해에 누캄프로 이적하며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틀레티코 빌바오전에서 데뷔전을 치렀음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마치 동화와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00만 달러의 이적료는 그에게 많은 기대와 부담을 주었고 바르셀로나 서포터즈는 많은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21살이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 중 하나에서 뛰는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모든 브라질 선수들이 성공하길 원하고 유럽에서 뛰길 원하죠. 하지만 경기에 많은 압박이 있었어요.”

“바르셀로나에서의 2년에 많은 부담을 가졌어요. 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여전히 행복해요. 유럽에서 뛰었던 시기였고 벤피카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후에 뛰던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면서 말이죠.”

“바르셀로나가 저에게 많은 이적료를 지불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 아니었어요. 어렸다는 것도 사실이고 처음으로 조국을 떠났다는 것과 제 아내인 로베르타와 결혼했다는 것도 사실이예요.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모든 것에 적응해야 했고 시간이 조금은 걸렸어요.”

스페인에서의 2년을 보낸 뒤, 지오는 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있는 포르투갈로 이적했고 따듯한 기후와 모국어가 있는 곳이라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벤피카는 1,100만 파운드를 지불하여 그를 데려왔고 서포터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2005년에는 벤피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다이빙 헤더를 하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하게 하였으며 많은 시티팬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로 벤피카는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골은 저와 팀에 매우 중요했어요. 벤피카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게 됐고 이전에는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죠. 많은 관심을 가졌던 골이었어요. 당시 그 골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몰랐지만 그 이후에 알게 됐죠. 많은 시티팬들이 그 골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지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하는 징크스는 다시 한 번 이뤄졌습니다. 그의 첫 맨체스터 더비에서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며 맨체스터 시티팬들의 꿈이기도 했던 승리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골을 넣은 지오는 관중들을 향해 달려갔고 그의 손을 귀에 대며 함성을 듣는 트레이드 마크 세리모니를 펼쳤습니다. 이는 벤피카에서 그가 골을 넣었을 때와 같은 세리모니이기도 했습니다.

“손을 귀에 대는 세리모니를 하는 이유는 팬들의 함성을 최대한 듣고 싶어서예요. 4,5만명의 팬들이 제 플레이에 함성을 보내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엄청난 느낌이예요.”

“저는 1년 계약을 맺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든간에 맨체스터 시티팬들은 제 삶의 한 부분이예요.”

“시티팬들이 저에게 보내준 성원과 사랑을 느끼며 신께 모든 것에 감사드려요.”

“맨체스터 시티는 서포터즈들의 충성과 사랑으로 이뤄져 있고 제 이름을 연호하는 멋진 순간을 볼 수 있어요. 제가 좋은 패스를 하거나 기술을 보일 때에도 제 이름을 부르죠. 새로운 구단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보다 더 좋은 성원을 바랄 수 없어요. 이런 성원을 받은 지 정말 오래됐고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 방식이 정말 행복해요. 맨체스터 시티와 오래하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것것 이룬 것 같네요.”

 

지오반니의 다음은?

지오반니와 맨체스터 시티는 아주 짧은 시간 동행하였습니다. 2008년 7월 방출되기 전까지 20경기를 뛰고 3득점을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헐 시티 유니폼을 입고 다시 맨체스터에 돌아왔을 때 팬들은 그를 따듯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곳에서 2년을 보내고 MLS에 있는 산호세 어스퀘이크로 이적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을 미국에서 보낸 후 브라질로 돌아가 2013년 은퇴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