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갤러거는 단기간에 가장 많은 판매 기록을 세운 데뷔 앨범을 발매했으며 영국 음악계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오아시스의 멤버로서 영국 음악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기 전, 노엘 갤러거는 스카이 블루를 응원하던 한 소년이었습니다.

음악과 축구가 공생하고 있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노엘 갤러거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로 알려지는 동안에 축구에 대한 충성을 분명하게 만들었으며 리암 형제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팬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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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과 구단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끈끈해졌으며 맨체스터 시티가 대회에서 우승을 한 이후에 드레싱룸에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주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뒤바뀔 수도 있었으며 2000년에 이를 회상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경기장에 처음 데리고 갔던 경기는 1971년에 메인로드에서 열렸던 맨체스터 시티와 뉴캐슬 간의 경기였어요. 그리고 CITY 팬이 되었죠.”

“유나이티드는 2부리그에 있었고 그리고 약 10년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탑팀이었어요.”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가 어려움을 겪었고 유나이티드는 유럽 최고의 팀이 되었죠. 그리고 왜 아버지가 날 올드트라포드가 아닌 메인로드로 데려갔을까 의아해했어요.”

“이유는 가족에 있었어요. 제 아버지는 형제들을 싫어했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고 유나이티드를 응원했었죠.”

“그래서 아버지는 CITY를 선택했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원칙적으로는 리암과 전 유나이티드 팬이어야만 했었어요.”

메인로드에 처음으로 갔을 때 맨체스터 시티는 5-1로 승리하였고 12살부터 오아시스를 결성했던 20대 때까지 키팍스 스탠드에 정기적으로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1993년부터는 음악과 관련된 장소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1994년 아마도 영국 내에서 단기간에 데뷔 앨범을 가장 많이 판매한 그룹이었을 것이며 90년대 최다 음악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오아시스와 갤러거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의 가장 유명한 이들의 유명세에 올라타기도 했습니다. 시티팬이기도 했던 사진작가 케빈 커밍스가 시티의 홈&원정 셔츠를 입은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의 사진을 찍었으며 1994년 NME(영국 음악 잡지) 표지에 그들의 모습이 실렸기도 했습니다.

2년 뒤에는 넵워스에서 공연을 하기 4개월 전에 8만명이 운집했던 메인로드에서 콘서트를 갖기도 했습니다. 노엘은 이 날을 ‘생애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표현했으며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그 날에 대해서 책을 쓸 수도 있을 겁니다. 정말로 멋졌어요. 훌륭한 순간들이었고 멋진 무대였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오아시스가 최고의 명성을 떨칠 때, 맨체스터 시티는 아쉽게도 그만큼 빛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서포터즈들과 함께 팀을 위해서 응원을 하였었습니다. 개리 네빌과 언쟁을 하기도 했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부활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습니다.

2012년 5월, 노엘 갤러거는 칠레에 머물고 있었지만 세르히오 아게로의 골은 그를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QPR 이 마치 평생동안 경기에서 리드를 했던 것만 같았어요. 좋지 않은 순간이었죠.”

“우리가 골을 넣기 전에 ‘지금 골이 필요해. 골을 넣어야만 한다면 지금 해야만 돼.’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제코가 골을 넣었죠.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제 동료는 아게로가 골을 넣었을 때 TV를 벽에서 떼어내려고 했었어요.”

“전 아기같이 울었어요. 이전에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기분이 날라가는 것만 같았어요.”

그 때 이후로 맨체스터 시티는 성장을 이어왔고 노엘의 개인 활동들도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CITY DNA | 노엘 갤러거

그의 스케줄이 허락할 때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지속적으로 방문하였고 93:20의 순간을 놓친 것을만회하고 있습니다.

2014년 리그컵 우승 당시에 웸블리에 방문했었고 그 이후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하였을 때 뱅상 콤파니의 주장 암밴드를 차기도 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했을 때 첫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람도 노엘 갤러거였으며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후 매치데이에 드레싱룸에서 선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원더월’이 되기도 했습니다.

40년 이상을 팬으로 있었지만 어떠한 것도 당연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오는 것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2014년에 2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한 이후에 노엘은 말하였습니다.

“리그컵 정도 우승할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미들스브로와 블랙번도 우승했기 때문이죠. 절대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절대 우승을 당연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라면 이런 모든 것을 지나왔어요.”

“절대 익숙하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을 거예요.”

노엘 갤러거는 음악의 아이콘일 뿐만 아니라 맨체스터의 자랑이자 영원한 맨체스터 시티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