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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레전드 글린 파르도 별세

구단 레전드 글린 파르도 별세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의 레전드인 글린 파르도가 향년 7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화요일 아침 갑작스럽게 글린 파르도의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1962년 버밍엄과의 경기에서 15살 341의 나이로 데뷔 경기를 가진 글린 파르도는 아직까지도 구단의 최연소 선수로 남아있습니다.

오른발잡이면서도 왼쪽 풀백이었던 그는 국가대표 경기를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최고의 잉글랜드 선수 중 한 명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조 머서와 말콤 알리손 감독이 이끌던 1960년대에 팀의 주축 선수였고 여러 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으며 특히 웸블리에서 열렸던 웨스트브롬과의 리그컵 결승전에서는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1962년부터 1976년까지 14년 동안 맨체스터 시티에서 380경기를 가졌으며 22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결국 축구 경력을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서 글린 파르도의 유산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딸과 또 다른 레전드인 마이클 도일의 아들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토미 도일이 구단 아카데미에서 뛰고 있습니다.

“파르도는 저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줬어요…”

구단 앰베서더인 마이크 서머비는 따뜻하고 젠틀했던 글린 파도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는 구단의 최연소 선수였고 훌륭한 축구선수였어요.”

“올드 트라포드에서 다리가 뿌러지지 않았다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경기를 뛰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부상은 다시 뛰게 하는데 어렵게 했죠.”

“포워드로 뛰기도 했었어요. 왜냐하면 골을 넣는 걸 좋아했고 훈련에서는 윗선에서 뛰기도 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내성적이고 조용하였죠. 축구선수로서 스스로 겸손하게 평가했고 구단에 미친 헌신은 대단했어요.”

“저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줬어요. 왜냐하면 그를 제치기 위해선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했거든요. 더 발전하게 해주었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고가 될 수 있게 해줬어요.”

“물론 토미 도일도 이곳에서 그의 할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어요.”

또 다른 구단 레전드인 콜린 벨도 파르도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나 선수로서 파르도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었어요.”  

 

“파르도는 훌륭한 친구였고 선수로서 과소평가되었어요. 너무 좋은 풀백이었기 때문에 그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어요.”

“정말 좋은 선수였지만 1970년 입은 부상으로 인해서 많이 고통스러워했어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뛸 수도 있었을 거예요.”

“꾸준함을 가졌던 선수였어요. 매주마다 100% 헌신했고 절대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다른 윙어 선수들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파르도를 상대할 때마다 무서움을 느꼈죠.”

“중요한 선수만큼이나 사람으로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결코 변하지 않았어요.”

George Heslop, Alan Oakes, Colin Bell and Glyn (1970)

“최연소 선수였고 이는 모든 걸 말하죠.”

“글린, 오키, 마이크 그리고 저는 원정을 떠날 때 같이 뭉쳐다녔고 매우 친하게 지냈어요.”

“우리 모두 비슷한 성격을 가졌었죠. 파르도는 구단에 대한 모든 좋은 점을 요약해 놨어요.”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었던 토니 북도 파르도의 별세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파르도는 단순히 훌륭한 풀백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포지션 밖에서 그의 경력 대부분을 뛰었던 훌륭한 풀백이었어요.”

“불평을 쏟아내지 않은 선수들 중 한 명이었어요. 파르도의 사촌인 알란 오크스가 저에게 한 시간전쯤 연락을 줬고 모두가 놀랐어요.”

“그렇게 좋은 팀동료를 만날 수 없었고 앞으로 많이 그리워할 거예요.”

“파르도를 더 높게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정말 슬픈 뉴스예요.”

오랜 기간 동안 팀동료이자 친구였던 토미 부스도 슬픈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파르도는 유머 감각이 있었던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훌륭한 선수였고요.”

“그가 포워드로 뛰었을 때에는 제가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해요. 하지만 레프트백으로 옮기고 나서 그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죠.”

“제가 뛰기 시작했을 때 뒤에는 글린과 알란 오크스가 있었고 이는 정말 좋았어요. 파르도와 함께 뛰는 건 기뻤어요. 항상 장난을 쳤기 때문에 경계했어야 했지만 말이예요.”

“데뷔했을 때 15살이었다는 걸 생각해봐요. 대단한 거예요. 특히 그 시대 때에는요.”

“말콤 알리손과 조 머서는 그에게서 무언가를 봤고 좌측 풀백으로 옮겼죠. 그곳에서도 엄청났어요.”

“파르도, 오크스, 마이크 도일, 그리고 저는 함께 골프를 많이 쳤었고 북쪽에 살던 저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죠.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어요.”

“잘난체 하거나 화내는 일이 없었죠. 멋진 가족을 가진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뛰기 시작했을 때 저를 돌봐주기도 했어요. 제가 뭔가 잘못한다면 저에게 몇 마디 건네줬죠. 그걸로 충분했어요!”

“정말 슬픈 날이지만 파르도는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정말 훌륭한 선수이자 한 사람이거든요.”

파르도와 60년을 함께 지내며 친한 친구였던 프레드 에이어도 그를 회상했습니다.

“15살 때 그가 처음 왔을 때, 센터 포워드로 뛰었어요. 맨체스터 시티 1군팀에 15살 선수가 중앙 공격수로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하기 위해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거예요.”

“다른 능력을 갖고 있었고 미드필더로 옮기고 그 후에 다시 레프트백으로 옮겼죠. 그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이기도 했어요. 1970 멕시코 월드컵을 위해 경쟁하기도 했지만 올드 트라포드에서 조지 베스트와의 경합에서 얻은 부상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어요.”

“빨랐고 믿음을 주는 플레이를 했죠. 훌륭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어요.”

“파르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겸손하고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였어요.”

맨체스터 시티의 이전 물리치료사였던 로이 베일리도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내가 만났던 가장 멋진 사람들 중 한 명있던 파르도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도 슬픕니다. 파르도와 축구 내에서 같이 일했었고 그는 진정한 레전드입니다. 그의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편안히 잠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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