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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의 모든 것: T

T 그리고 Tevez


2009년 시티의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뒤로 하고 시티 블루를 대표하게 된 카를로스 테베즈는 시티에 합류하자마자 순식간에 클럽의 영웅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테베즈는 시티에서 그의 첫 시즌에 총 42차례의 경기에 출장하며 29개의 득점을 뽑아냈고 그 해 시티의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시티 골 50회에 도달에 두번째 기록을 가지고 있는 테베즈는 2011년 FA 컵 결승전에서 주장을 맡으며 클럽이 35년동안 기다려왔던 FA 컵 트로피 획득과 44년의 염원이었던 리그 우승에 커다란 역활을 하였습니다.

T 그리고 Trautmann


시티의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베르트 트라우트만은 유럽의 아픈 기억인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영국 대중들의 분노를 극복하고 클럽의 인기 선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낙하산 부대원 중 하나였던 트라우트만은 노르망디에 갖히게 되며 전쟁 포로가 되었고 아쉬톤-인-마켓필드 (Ashton-in-Makerfield)의 포로수용소에서 축구를 시작하며 골키퍼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트라우트만은 전쟁 후에도 잉글랜드에 남았고 농사일과 세인트 헬런스 타운 (St. Helens Town A.F.C)에서 골키퍼로 활동하였고 그 당시 프랭크 스위프트의 은퇴로 인해 골키퍼가 필요했던 시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원정 경기때마다 군중의 욕설을 견뎌야만 했던 트라우트만은 재빠르게 그의 재능과 경기력을 알아본 시티 팬들의 마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총 545번의 그가 출장한 시티 경기 중 1956년 FA 컵 결승전은 트라우트만의 대표 경기입니다. 경기 도중 경추에 골절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라운드에 남아 시티를 대표했던 그는 클럽의 트로피 획득에 주역이었습니다.

경기 종료를 약 15분 남겨 놓고 트라우트만은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되었고 그 당시 후보 선수를 사용할 수 없었던 FA컵의 규정에 따라 시티는 10명을 선수로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트라우트만은 경기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고 상대의 중요한 슛팅을 막아내며 팀의 3-1 승리에 핵심이 되었습니다.

T 그리고 Television


시티의 경기 첫 중계 방송은 1956년 12월 15일에 있었던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였습니다.

1992년에 시티는 Sky의 월요일 저녁 경기 생중계의 첫 번째 타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T 그리고 Tarnat


독일 출신의 미카엘 타르나트는 1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시티를 대표하였지만 팬들에게는 오랫동안 지속될만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시티에 합류하여 레프트-백의 포지션을 맡게 된 타르나트는 2003년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30 야드의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기도 하였습니다.

시티 합류 바로 다음 시즌 그는 다시 독일의 하노버로 돌아가게 되었고 2009년 은퇴를 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인재 발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T 그리고 Tueart


1974년 당시 최고의 몸값으로 시티에 합류한 데니스 튜어트는 곧바로 클럽에 적응하며 팬들의 인기 선수가 되었습니다.

시티와 뉴캐슬 경기에서 오버헤드 킥을 성공시키며 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 튜어트는 1978년에 커다란 야망을 가지고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하며 현지의 팬들의 영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 사이에서 호화로운 삶을 보낸 데니스는 약 2년 후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되었고 총 276회의 시티 경기에 출장하여 112골을 성공시켰으며 1983년에 다시 시티를 떠나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알파벳 U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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