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그리고 Silva
“Merlin”, “El Mago”, “The Wizard”… 마법사와 관련된 별명을 가진 시티의 미드필더, 스페인 출신의 다비드 실바.
스페인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던 실바는 2010년 발렌시아를 떠나 시티에 합류했으며 현재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중 하나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스페인 그란 카나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부엌에서 과일과 채소로 축구 기술을 연마했던 다비드 실바는 U.D 산 페르난도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는 도중에 발렌시아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습니다.
실바는 10년 동안 발렌시아를 대표하다가 야야 투레와 비슷한 시기에 2010년에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였습니다.
2번의 리그 타이틀 획득, FA 컵, 캐피탈 원 컵의 주역인 실바는 스페인의 국가 대표로 월드컵 출전 뿐만 아니라 2차례의 유럽피안 챔피언쉽 메달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Silva: My XI
S 그리고 Summerbee
시티 팬들에게는 설명할 것도 없이 유명한 마이크 섬머비!
클럽 역사상 최고의 윙거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크 섬머비는 현재까지도 나이를 떠나 많은 시티 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조 머셔의 필수 선수 중 하나였던 섬머비는 시티의 평온한 시기를 위해 막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마이크 섬머비는 콜린 벨 그리고 프라니 리와 함께 시티의 삼총사로 팀의 거듭되는 성공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S 그리고 Songs
시티 서포터들의 응원가 부르기는 1990년 ‘블루문’ (Blue Moon)이 대표 응원가로 자리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피터보러 유나이티드와 크루 알렉산드라가 ‘블루 문’을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시티는 ‘블루 문’을 시티만의 응원가로 재탄생시켰고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루 문’을 피터보러 유나이트드 또는 크루 알렉산드라가 아닌 시티의 대표 응원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는 새로운 응원가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Lily the Pink’, ‘Colin the King’, ‘Sha-la-la-la-Summerbee’, ‘Dennis Tueart King of all Geordies’ 및 ‘Rodney, Rodney’ 등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최근에는’Here’s to you Vincent Kompany’, 야야/콜로 투레, 파블로 자바레타, 세지오 응원가 등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야야와 콜로 투레 형제가 직접 부르는 응원가
S 그리고 Sheron
밝은 미래가 예견되었던 리버풀 출신의 포워드 마이크 쉐론.
유소년 훈련 제도로 인해 시티에 합류하게 된 쉐론은 ‘Deadeye’란 별명과 함께 본능적인 골 감각과 쿨한 선수로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1년 9월년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뷔 무대를 치른 쉐론은 그 시즌에 29차례 경기에 출장하며 7개의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쉐론은 나이얼 퀸과 좋은 조합을 이루면서 1992/93 시즌에 총 38회의 경기에 출장하며 14 득점을 뽑았습니다.
피터 레이드의 이적과 브라이언 호튼의 합류는 쉐론과 시티와의 인연을 끝의 서막이 되었으며 쉐론은 1994년에 시티를 떠나 노리치에 합류하였습니다.
S 그리고 Swift
17년의 긴 세월동안 오직 시티 소속의 선수로 축구를 하였던 프랑크 스위프트는 시티의 골키퍼이자 잉글랜드 첫 골키퍼 캡틴이였습니다.
스위프트는 시티에서 4차례 시즌을 보내며서 클럽의 선수 중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는 듯 하였지만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이유로 7시즌을 쉬어야만 했습니다.
스위프트는 시티의 또 다른 골키퍼 베르트 트라우트만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1949년에 은퇴를 하며 저널리스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58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있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담당하게 되면서 비행기에 오른 스위프트는 ‘1958년 뮌헨 비행기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S 그리고 Substitutes
1965/66 시즌 잉글랜드 축구 리그에 처음으로 도입된 후보 선수 제도.
시티의 첫 후보 선수였던 글린 파도는 후보 선수 당시 미사용 후보 선수로 한번도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하였고 3년 후, 로이 치텀이 시티 최초의 사용 후보 선수가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알파벳 T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