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그리고 Georgia

한때 시티의 지사로 알려진 그루지야 티블리시는 1990년대 중반에 맨체스터 시티 스카우트가 즐겨찾던 헌팅 그라운드였습니다.

그루지야에서 영국으로 온 첫 선수는 지오 킨클라제였는데, 그는 1995년에 거의 볼을 처음 터치하는 순간부터 시티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같은 나라 동료 선수로 밀크하일 카벨라시빌리가1995–96 시즌 후반기에 왔는데, 그의 홈 데뷔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디를 상대로 득점을 넣어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카카버 트스크하다제는 시티에 합류한 그루지야 세 번째 선수로, 1998년에 합류했습니다. ‘피포’라는 별명을 가진 이 선수는 그루지야에서 ‘제공권의 왕’으로 유명했는데, 메인 로드에서 오래 정착하다가 풀럼전에서 충돌로 무릎 인대를 다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시티에서 다시는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머타즈 셀리아는 그루지야에서 온 마지막 선수였습니다. 그의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은 센터백에도 불구하고 시티에서 있는 동안에 풀백으로 뛰어야 했던 모습입니다. 1999년에 그의 합류는 시티와 그루지야 선수 간의 4년 간의 이적 활동의 신화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사우샘프턴전 킨클라제: 1996

G 그리고 Goater

189경기에 출전해서 103골을 기록한 고터는 클럽에서 5년간 뛰는 동안 레전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티 선수 중 최고 득점자 중 한 선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숀을 레전드로 만든 것은 단지 골만이 아니라 그의 장난기 넘치는 성격과 너그러운 품성과 경기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자질과 그의 축구 정신은 2003년 영국에서 젊은 스포츠인으로 MBE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현재 BBC 라디오 맨체스터 시티를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가로 숀의 명성은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여전합니다.

숀 고터의 톱 10 시티 골

G 그리고 Gibson

스탄 깁슨은 1960년 8월 이래로 메인 로드에서 경기장 관리인으로 섬기다가 200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경기장에서 가까이 있는 자택에서 작고했습니다.

스탄은 메인 로드에서 전설적인 사람이었는데, 영국 최고의 경기장 관리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거의 모든 클럽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러 탐을 냈는데, 스탄은 시티에 전적으로 의리를 지키며 영국에서 최고로 경기하기 좋은 그라운드를 유지했습니다.

클럽 비서 버나드 할포드는 “스탄은 콘크리트에서도 잔디를 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며 그의 경기장 관리에 대한 뛰어난 재간을 피력했습니다.

그의 친근한 안면과 너그러운 품성은 아직도 기억되며, 그의 이름은 매일 시티 풋볼 아카데미에서 불리고 있는데, 새로운 시설 회의실의 이름이 그를 기리어 지어졌습니다. 

추가로 2014년에 깁슨은 메인 로드 센터 사이트에서 특별 헌정으로 기리어졌습니다.

깁슨의 잔디

G 그리고 Gaudino

임대 선수로 인상을 남기는 선수는 소수지만, 독일 스타 마우리치오 가우디노는 시티에 6개월간 있는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시티팬의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전형적인 맨체스터 시티 미드필더 독불장군이었는데, 단 한 가지 팬의 의구점이 있었다면, 그의 임대가 종료됐을 때 왜 그를 영구적인 선수로 영입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우디노는 원래 게리 플릿크로프트와 스티브 로마스가 활약을 펼치던 미드필드에 창의력을 더하려 임대되었습니다. 

시티에 있는 동안 좋은 인상을 남긴 가우디오의 시티 선수가 될 기회는 브라이언 호튼이 떠나는 바람에 증발하고 수천 명의 실망한 팬을 뒤로하고 떠났습니다. 

그는 2003년 은퇴할 때까지 FC 바젤, VFL 보쿰, 안틸라스포 및 SV 월호프 만헤임에서 활동했습니다.

가우디오의 이름은 여전히 경기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아들 지안루카는 2014/15 시즌에서 독일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8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시티의 알파벳 여행은 내일도 계속됩니다… 아마도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