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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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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ITY DNA | 푸른 피를 가진 선수

CITY DNA는 클럽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장소, 그리고 순간에 대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마이크 도일은 스카이 블루의 DNA 가지고 있던 선수였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축구 경력은 40여년전에 끝났지만 이전 주장인 그가 뛰었던맨체스터 더비 경기를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카이 블루 유니폼을 벗은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이크는 맨체스터 시티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시티와 유나이티드간의 대결에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맨체스터 시티 선수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팬들은 가끔 다른 어떤 것보다 선수들이 가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며 찬스가 왔을 선수들이 해왔던 모습을 경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이크 도일은 정확하게 이것을 알고 있었고 경기에서 팬들이 두르곤 했던 팀의 깃발에 주문을 외우곤 했습니다. 깃발에는 꿈꾸는 것처럼 경기하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는 이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는 맨체스터에는 2개의 팀만이 존재한다고 하였고 두 팀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시티 리저브팀이라고 하며 맨체스터 시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경기장에서도 그는 그가 가진 100% 경기력만을 보여주었으며 터프하고 단호한 모습을 경기장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유나이티드를 싫어했던 그였으며 60년대와 70년대에 맨체스터 더비가 있기 기자들은 그에게 찾아왔고 팀을 고무시켜주는 발언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팬들은 이런 그를 사랑할 밖에 없었습니다.

마이크 도일은 항상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였고 이런 그의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발언을 표현해 냈습니다. 그의 자서전인 블루 블러드에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깃발에 새겨진 마이크 도일

 

마이크 도일은 1962 맨체스터 시티에 연습생으로 합류하였습니다. 헤드 스카우터였던 해리 굿윈은 그의 고향이었던 레디쉬에 들렀을 많은 클럽들이 그를 쫓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이크의 아버지가 식당에서 경찰 헬멧을 쓴 채로 맨체스터 시티 프로그램 책자를 옆에 두고 있었을 때 굿윈은 마이크 도일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굿윈은 젊은 선수를 확신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이크는 바로 기회를 잡고 메인로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일 있었습니다. 1964 웨일스의 레전드인 찰스가 17살인 마이크를 괴롭힌 경기인 카디프 시티 전에서 데뷔를 있었고 경기는 2-2 종료가 되었습니다.

머서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마이크를 유심히 바라봤고 리그에서 19경기에 나설 있었습니다. 긴급하게 공격수 자리가 필요할 경기에 나서며 6경기 4골을 기록하였고 해당 시즌에 리그에서 7골을 넣을 있었습니다.

67/68 시즌부터는 등번호 4번을 부여받으며 수비진영의 축으로 자리 잡았고 리그 42경기 40경기에 뛰며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난 , 맨체스터 시티가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리그에서 홈과 원정 경기를 모두 이기게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4년에는 유나이티드 때문에 신경이 거슬리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나이티드가 강등당하게 되며 2승을 제물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강하게 밀어붙였으며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맨체스터 더비에서 번의 패배만을 기록했습니다. 1969 FA 우승과 1970 UEFA 위너스컵 우승을 달성했을 때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발 라인업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고 하프백 역할에서 센터하프 자리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1970 멕시코 월드컵 멤버로 뽑혔지만그의 아내가 몸이 좋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간호하기 위해 국가대표팀 자리를 사양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75년에 국가대표팀 데뷔를 가질 있었고 클럽에서는 주장 암밴드를 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장 해인 1976 2월에 뉴캐슬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컵 트로피를 들어올릴 있었습니다. 다음해에도 주장직을 수행하며 다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뻔했지만 리버풀에 승점 1점이 부족하여 아쉽게 2위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무릎 부상을 당하였으며 이는 시티에서의 경력이 저물어가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1977/78 시즌에 13번만 선발 라인업에 들었고 결국 1978 5 파운드에 스토크로 이적하게 됐습니다. 그의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경력은 558 출전과 40골이었습니다.

 

푸른 피를 가진 토미 도일

스토크, 볼튼, 로치데일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갔고 1984 은퇴를 하였습니다. 64세의 나이로 2011년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전에는 그의 자랑스러운 손자인 토미 도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마이크 도일의 꿈은 그의 손자가 가족 이름을 달고 맨체스터 시티 선수로 뛰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맨체스터 시티 아카데미 선수로 활약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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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ITY DNA | 풋볼 핑크

Football Pink(이하 풋볼 핑크)는 ‘매치오브더데이’를 보는 것 만큼이나 인기가 많았으며 맨체스터 시티(와 유나이티드) 팬들의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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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을 돈 트로피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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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ITY DNA | 스폰서, 사브에서 에티하드까지

회사 이름이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에 처음 등장한지 37년이 지났으며 하늘색 유니폼에 아무런 스폰서 회사명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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