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이크 서머비의 축구 경력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앰버서더이자 레전드인 마이크 서머비는 축구팬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있습니다. 하지만 구단의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선수들 중 한 명이며 팀에는 헌신과 새로운 차원의 모습을 보여줬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이크 서머비에 대해 알아보고자 이번 ‘우리가 몰랐던 5가지’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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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에 합류

조 머서 전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한 후 마이크 서머비를 그의 첫 영입 선수로 결정했으며 아마도 이 결정은 그가 영입한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첼트넘 출신의 윙어는 스윈든 타운에서 단돈 31000파운드에 이적했으며 그의 주급은 당시 35파운드에서 40파운드로 늘어났을 뿐이었습니다.

스윈든 타운은 그를 팔기 싫어했었지만 현금이 필요했었던 당시에 결국 그를 팔아야만 했고 맨체스터 시티와 조 머서 감독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한편, 조 머서 감독은 마이크 서머비의 아버지와 함께 전쟁 기간에 같이 축구를 했던 사이이기도 했습니다.

 

CITY에서의 기록

윙어로써 맨체스터 시티에서 1965/66부터 1974/75시즌까지 10시즌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에 총 452경기에 나서서 68골을 득점했으며 구단 최다 출전 기록에는 8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최고 시즌은 1967/68시즌이었으며 1부리그에서 14골을 넣었고 FA컵에서도 4골을 성공시켰습니다.

196년부터는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1967/68에는 1부리그에서 우승을 들어올렸습니다. 이후에 FA컵(1969), 리그컵(1970), 채리티 쉴드(1968,1970), 그리고 유로핀컵 위너스컵(1970) 등에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마이크 서머비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8회 출전했으며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968년 2월 24일 햄든 파크에서 이 경기가 열렸으며 관중은 무려 134,000명이었습니다. 한편, 1968년 스위스와의 UEFA 예선전에서 첫 득점을 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경기장 밖의 일

마이크 서머비는 여러 사업에 참여했었으며 남성옷 비즈니스를 조지 베스트와 같이 소유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실버스타 스탤론, 마이클 케인 등과 함께 ‘승리의 탈출’에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서머비가 뛰었던 다른 구단

서머비는 그의 경력에서 오로지 잉글랜드에서만 뛰었습니다. 스윈든 타운, 번리, 블랙풀, 그리고 스톡포트에서 뛰었으며 스톡포트에서 그의 축구 선수 인생을 끝냈습니다.

1978/79시즌에는 스톡포트에서 감독을 했었으며 1980년에는 논리그 소속인 모슬리에 단 한 경기 출전을 위해 잠시 선수로 복귀하기도 했었습니다.

현재는 맨체스터 시티의 앰배서더로 활동중이며 구단을 대표하여 전세계에 구단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홈경기에 모습을 드러내며 시티팬임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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