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펩 과르디올라는, 다가오는 아스톤 빌라전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펩 과르디올라는, 이번 일요일 아스톤 빌라전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10년 동안 무려 2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펩은, 이번 경기로 시티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지휘한 감독이 된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이끄는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는 펩의 시티 감독 통산 593번째 경기다.
이는 1950년부터 1963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레스 맥도월의 592경기 기록을 넘어서는 수치이며, 펩은 현대 축구의 더 많은 대회 일정과 전례 없는 성공 덕분에 맥도월보다 3년이나 빠르게 이 기록에 도달하게 됐다.

물론 1950년대와 현재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기에, 맥도월과 펩의 팀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다소 불공평할 수 있다.
당시 시티는 우승 경쟁과 거리가 있었고, 맥도월의 시대는 생존과 재건에 가까웠다. 그의 승률 37.16%는 당시 구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반면 펩의 시티는 승률 70.3%를 기록 중이며, 이는 뒤를 잇는 마누엘 페예그리니(59.88%)와 로베르토 만치니(59.16%)보다도 10% 이상 높은 수치다.
1947~49시즌 팀을 맡았던 샘 코완이 66.67%의 승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이는 단 30경기 동안의 기록이었다.
펩 체제의 시티는 지금까지 1422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2.4골을 넣었고, 실점은 경기당 1골 이하로 억제했다.
이번 기록은 에티하드에서의 감동적인 작별 인사, 그리고 월요일 예정된 퍼레이드와 Co-op Live 애프터 파티까지 이어질 또 하나의 특별한 순간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긴 시간 동안 팀을 이끌며 여러 차례 역경을 이겨낸 레스 맥도월의 놀라운 업적 역시 기억될 만하다.
선수이자 감독으로 클럽에 헌신했던 레스 맥도월의 맨체스터 시티와의 인연은, 중간에 렉섬에서 보낸 1년을 제외하면 무려 25년에 걸쳐 이어졌다.
맥도월이 처음 주목받게 된 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였다.

항공기 설계사로 일하던 그는 일감 부족으로 해고됐고, 실직자들끼리 치르던 경기에서 선덜랜드 AFC 스카우트의 눈에 띄게 됐다.
이후 선덜랜드와 계약해 로커 파크에서 13경기에 출전했고, 1938년 약 7,500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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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월은 입단 1년 만에 메인 로드의 주장으로 임명됐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축구 커리어를 잠시 멈추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렉섬 AFC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1년여 뒤, 시티는 이번에는 감독직 제안과 함께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당시 그의 첫 번째 임무는 2부 리그에 있던 클럽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는 여러 의미에서 역사적인 선임이었다. 그의 시대는 단 한순간도 드라마와 긴장감이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약 13년 동안 팀을 이끈 그는, 시티 역사상 최장수 감독 기록에도 단 1년 차이로 다가섰다.
첫 시즌 만에 승격에 성공했지만, 이후 디비전 원에서의 세 시즌은 우승 경쟁보다는 생존 싸움에 가까웠다. 당시 시티는 단 한 번도 15위 이상으로 시즌을 마치지 못했고, 꾸준히 강등 위협 속에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1954/55시즌과 1955/56시즌, 레스 맥도월이 이끈 시티는 각각 리그 7위와 4위를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이후 1957/58시즌 한 차례 더 톱10 진입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시즌들은 모두 12위 이하에 머물렀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리그 성적만 놓고 본 이야기다.
맥도월은 펩 과르디올라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는 당시 유명했던 ‘레비 플랜(Revie Plan)’을 도입했는데, 이는 돈 레비를 오늘날로 치면 ‘가짜 9번(False No.9)’ 역할로 기용하는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맥도월 초반 시티의 승격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또 ‘마스든 플랜(Marsden Plan)’이라는 덜 알려진 실험도 시도했다. 키스 마스든을 스위퍼 역할로 활용하는 전술이었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 프레스턴에 1-6, 웨스트 브롬에 2-9로 대패하면서 이 계획은 곧바로 폐기됐다.
반면 레비 플랜은 훨씬 성공적이었다.
맥도월 감독 시절 최고의 순간은 1950년대 중반이었다. 그는 시티를 1955년과 1956년 연속 FA컵 결승으로 이끌었고, 특히 1956년 결승은 유명한 ‘트라우트만 결승전(The Trautmann Final)’으로 남아 있다.
당시 시티는 버밍엄 시티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데니스 로 같은 선수들을 영입했으며, 1960년 그의 5만5천 파운드 이적료는 당시 영국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결국 시티는 맥도월의 마지막 시즌이 된 13번째 시즌에 강등됐고, 그는 1963년 올덤 애슬레틱으로 떠나 2년간 팀을 이끌었다.
이 위대한 클럽의 헌신적인 인물은 1991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티 감독 최다 경기’ 기록을 펩 과르디올라에게 넘겨주게 된 것을, 맥도월 역시 기쁘게 바라봤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모든 구성원은 또 하나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운 펩에게 축하를 전한다.
정말 완벽한 피날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