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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ITY DNA | 프린터기를 주고 영입한 데이나

CITY DNA | 리그 챔피언이 된 여자 선수들

CITY DNA | 리그 챔피언이 된 여자 선수들

데이나는 짧고 환하게 빛났던 월드컵 레전드였습니다.

1978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축구에 외국인 선수가 영입되었습니다. 토트넘은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리카 빌라를 영입하였고 버밍엄 시티는 알베르토 타란티니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는 폴란드의 주장이었던 카지우 데이나를 영입하였으며 당시에 평범하지 않았던 선수 이적이었습니다.

 

이야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폴란드는 카즈미에르즈 데이나라는 주장을 주축으로 조별그룹에서 가장 높은 순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만나며 아쉽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1978 당시 월드컵 경기 방식은 현재와 다르며 16개팀 4개조로 1라운드 조별리그를 갖고 각조의 1,2 팀이 2라운드 조별리그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각조 1위팀은 결승전으로 가며 2위팀은 3,4 결정적 경기를 갖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월드컵 기간에 데이나를 유심히 지켜봤으며 그를 영입 대상으로 점찍었습니다. 비록 그의 나이가 31살이 되었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말콤 알리슨과 토니 북은 이미 강했던 스쿼드에 다른 장점을 더해줄 선수로 그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짚고 넘어가야만 했습니다.

데이나는 폴란드 군대팀의 주장이었고 그의 제대가 먼저 이뤄져야만 했습니다. 다음에 그가 속해 있었던 클럽이었던 레기아와 계약을 맺는 순서가 필요했습니다. 레기아는 10 파운드의 금액에 합의를 했지만 바로 현금으로 입금하는 것에 대해서 꺼려하였습니다. 레기아가 원했던 것은 전기 제품들이었고 사진 인화기, 프린터 등을 원했었습니다. 일반적인 거래는 아니었지만 당시 맨체스터 시티는 ‘Brother’라는 전자제품 회사로부터 스폰서를 받고 있었고 레기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불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협상은 1978 11월까지 이어졌고 데이나는 맨체스터 시티로 결국 이적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이나가 맨체스터에 도착했을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고 입스위치 타운과의 데뷔전을 치르기 전까지 2주간의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그의 데뷔 경기를 보기 위해 메인로드 게이트에 6천명의 팬들이 모였고 그가 보여줄 있는 것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보비 롭슨이 이끄는 입스위치에 2-1 패하였습니다.

당시 그가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을 불행하게도 맨체스터 시티의 슬럼프 기간이 시작되고 있었고 당시에도 단기적인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ENGINE ROOM: Laundry Manager, Janet 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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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는 15경기 동안 승리가 없었고 데이나는 부상으로 인해 3 중순까지 2경기에만 나올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즌 마지막 8경기에 그가 돌아올 있었고 리그 강등에서 살아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4 중순에 가졌던 미들스브로와의 경기에서 헤더로 그의 골을 신고할 있었으며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4번의 홈경기에서 6골을 만들어 있었습니다. 아스톤 빌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프리킥 골을 만들어 내며 메인로드에 운집했던 팬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맨체스터 시티는 강등에서 살아남을 있었고 1979/80 시즌에 그가 풀타임으로 있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경기에 나설 때면 골을 만들어 냈으며 동료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의 UEFA 8 2차전 경기에서 보여준 발리슛은 그가 골을 넣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항상 부상이 뒤따라왔고 절반의 시즌을 부상으로 없게 하였습니다.

1980 그를 데려왔던 토니 북과 말콤 알리슨이 감독에서 해임되었고 본드가 새롭게 감독직을 수행하였습니다. 팀의 상황을 살펴본 그는 데이나를 산호세 어스퀘이크로 이적시켰으며 데이나는 그의 축구 경력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1981년에 찍은 승리로의 탈출이라는 영화에 마이크 서머비와 함께 짧게 출연했으며 펠레, 실베스터 스탤론 등도 등장하였었습니다.

그가 경기에 나설 때면 경기에 즐거움을 불어넣었고 팬들은 그런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데이나가 보냈던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생활은 안타까움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월드클래스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그의 고향인 폴란드에서는 오늘날까지 폴란드 최고의 선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을 때에는 그의 전성기가 지났을 무렵이었고 클럽도 혼란의 시기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1989 9 1 샌디에이고에서 그는 아쉽게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그의 나이가 41살에 불과했을 때였습니다.

데이나의 이전 클럽인 레기아에서는 1994년에 그의 등넘버였던 10번을 그에게 남겼으며 폴란드 축구협회와 폴란드 축구신문들은 데이나를 폴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그를 선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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