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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ITY DNA | 토미 허치슨

BACK OF THE NET: Tommy Hutchison watches from the ground as his diving header opens the scoring in the 1981 FA Cup final.

BACK OF THE NET: Tommy Hutchison watches from the ground as his diving header opens the scoring in the 1981 FA Cup final.

짧지만 강렬하게 빛났던 토미 허치슨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토미 허치슨은 1980년대 초반 맨체스터 시티에서 짧지만 굵게 빛난 슈팅 스타였습니다. 기술 뿐만 아니라 팀에 대한 헌신까지 가지고 있었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우측면을 지배하며 메인로드에서 응원하던 세대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가 넣은 골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골은 100번째 FA 결승전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자살골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골로 재경기를 가졌으며 토트넘이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골은 영국 축구 역사에 남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맨체스터에서 허치슨 타임에 넣은 골이었습니다.

 

허치슨 이야기

허치슨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17 출전 기록을 가졌으며 이에는 1974 월드컵에서 2경기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중학교에서 체력 부족으로 뽑혔던 것을 고려하면 블랙풀과 코벤트리 시티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것은 대단한 업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일에 헌신적이었고 시티팬들은 그것에 대해 말해오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결정력은 그의 축구 경력에서 드러나며 지역 클럽이었던 던도날드 블루벨에서 뛸때 이러한 모습이 필요 했었습니다.

알로아 어슬레틱에서 그에게 기회를 주기 전에 블랙번 로버스, 던디 유나이티드, 올드햄 어슬레틱에서 그를 거절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알로아 어슬레틱에서의 기회를 통해서 스스로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하는데까지 성공할 있었습니다.

블랙번에서 5년을 보냈으며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기 팀의 1 리그 승격에 도움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1960년대 맨체스터 시티에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던 머서 감독은 1972년부터 코벤트리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그곳에서 허치슨을 14 파운드에 영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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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안 코벤트리에서 지내며 300경기 이상을 소화했고 3번이나 구단 올해의 선수에 뽑히기도 했었습니다.

1980 10월에 33살이었던 허치슨은 본드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였는데 당시 팀은 1부리그 강등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47 파운드에 이적하였고 코벤트리 동료였던 보비 맥도날드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브리스톨 시티에서 게리 고우까지 영입하며 스코틀랜드 3인방이 맨체스터 시티의 강등권 탈출을 위해 푸른 셔츠를 입게 되었습니다.

본드가 이끄는 팀은 리그에서 13경기만에 승을 거둘 있었고 이는 허치슨이 브라이튼을 상대로 2-1 승리하며 데뷔한 경기 바로 3 전이었습니다.

30대의 나이였고 1부리그에서 줄곧 하위팀에서 뛰었던 그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어릴 수비수들을 제치기 위해 많은 기술들을 연마하였었고 우측면에서 경기에 지속적으로 나오며 그의 빠른 발을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데니스 투아트, 케빈 리브스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전달하였습니다.

그가 나온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2 패하였고 팀은 해당 시즌에 5번의 패배만 기록하였었습니다. 허치슨은 최고의 선수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팀은 최하위에서 천천히 올라와 결국에는 12위로 시즌을 마무리 지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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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에서는 그의 역할을 다하였지만 FA컵에서는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FA컵의 100번째 결승전이었고 맨체스터 시티가 03/04년에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허치슨은 대회에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였고 리그에서 2위에 있었던 입스위치를 꺾으며 결승전에 올라가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허치슨은 전반 30분에 다이빙 헤더를 하며 팀이 리드를 잡게 해주었습니다. 웸블리에서의 150번째 FA 결승전 골이었고 메인로드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능력 그대로를 웸블리에서 보여주었고 경기에서 영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 79분에 허치슨이 경기를 동점으로 만드는 자살골을 넣으며 그의 머리를 쥐어 감싸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후반 추가 시간에 교체되어 나갔고 5 재경기가 열렸을 때에는 토트넘이 3-0으로 이기며 우승 트로피를 내줄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였고 28 출전을 하였지만 81/82 시즌 도중 중간에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홍콩은 최고의 선수들이 뛰기에는 일반적인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향하였고 불로바라는 팀에서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팀을 자주 옮겨 다녔고 번리와 스완지에서도 경기에 나섰었습니다. 특히 스완지에서는 43 172일이라는 나이에 경기에 나서며 스완지에서 경기에 나선 가장 나이 많은 선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도 머티어 티드필이라는 남부리그에서도 뛰었고 1994년에 은퇴를 결정하였습니다. 그의 축구 경력은 30년이었으며 1,000회가 넘는 경기에 나섰었습니다. 또한 스완지에서는 42살이 되기 유럽대항전에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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