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30대의 나이로 행정가와 감독으로서 맨체스터 시티에서 지낸 월프 와일드를 소개합니다.

월프 와일드의 나이 26세부터 맨체스터 시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구단에서 그의 첫 역할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어니스트 망널 감독을 보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망널 감독이 떠나고 데이빗 애쉬워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와일드의 역할은 클럽의 비서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업무는 193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여러 감독들을 보좌하면서 클럽의 한 부분이 되게끔 해주었으며 비서관으로서도 스트레스 없이 풀타임 매니저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구단이 그에게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에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비서관 업무까지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업무를 매우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매우 부지런했던 그는 그가 지휘봉을 잡았던 첫 해에 FA컵 결승전에 팀을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버튼에 3-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디비전 1 리그에서는 16위로 마감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 쉬프트와 같은 어린 선수를 No.1 골키퍼로 1군팀에 올리는 등 한 두가지 변화를 꾀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결과물을 쏟아냈습니다. FA컵에서는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고 이번에는 포츠머스를 꺾고 팀에 2번째 FA컵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리그에서는 5위로 마감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중상위권에 팀을 올려놓았습니다.

 

WATCH: #18 CITY DNA | ‘King of the Kippax’ 잡지

 

와일드 감독은 1936/37시즌에도 팀을 이끌었고 드디어 최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초반 리즈와 웨스트브롬위치를 꺾었지만 7경기 연속으로 승리 경기가 없었으며 12월에도 쉐필드와 그림스비에 각각 5-1,5-3으로 패하며 안 좋은 경기력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기력은 피터 도허티, 알렉스 허드, 샘 바카스의 영입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영입 이후 무패행진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4,000명의 팬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메인로드에서 4월 10일에 리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아스날을 상대로 2-0 승리를 이끌며 챔피언십 우승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습니다. 20경기 무패 경기를 이어갔고 리그 2번째 마지막 경기에서 쉐필드를 상대로 4-1 승리를 거두며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독으로 재임했던 5년 동안 1번의 FA컵 우승과 1번의 우승을 달성했으며 감독으로서 경험이 전무했던 그에게는 엄청난 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축구의 신이 불만을 가진 것이었는 것이 몰라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후 다음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는 강등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후 강등을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 했으며 이런 일은 리그에서 그 이후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시즌 뒤, 바로 디비전 1으로 승격할 수 있었지만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9년 동안 디비전 2 클럽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내내 와일드 감독은 팀을 이끌었고 1946년 리그가 재개됐을 때 디비전 2에서의 다섯번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까지 팀을 이끌고 주장이었던 샘 코완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성실히 일하였으며 맨체스터 시티에 열정을 바쳤던 그는 비서직으로도 그의 역할을 해 나갔고 57세의 나이로 1950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