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가 해냅니다!’

45년도 더 전에 맨체스터 더비에서 위의 문장이 명료하고도 확실하게 울려퍼졌습니다. 당시 스탠드에서 해설을 보고 있었던 제랄드 씨는 맨체스터 더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골 중 하나인 데니스 로의 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맨체스터 축구 역사에서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며 양 팀의 팬들도 여전히 이 골에 대해 회상을 하곤 합니다.

1974년 4월 27일, 디비전 1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가졌으며, 당시 토미 도허티 감독이 이끌던 유나이티드는 강등 위기에 몰려있었습니다. 경기에서는 데니스 로가 모습을 드러냈고 시즌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1년을 보낸 후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2번째 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74년 강등권 싸움을 하던 유나이티드와는 다르게 오랜시간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데니스 로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후 1974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같은 해에는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그 누구도 드라마가 펼쳐질지 몰랐고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시즌의 마지막 2번째 경기였고 이 날은 유나이티드 팬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프란시스 리의 백힐 패스를 받은 데니스 로가 골을 만들어 냈고 이 골은 1-0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이 되었습니다. 골이 들어간 순간, 경기장에 왔던 56,966명의 팬들은 조용해졌고 데니스 로는 중앙 센터라인으로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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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이후 데니스 로는 교체되어 들어갔고 몇몇 관중들이 취소 경기를 만들기 위해 경기장에 난입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매치는 기억에 남는 더비 경기 중 하나가 되었으며 유나이티드는 데니스 로의 골로 강등을 피할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디의 강등은 데니스 로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등권 싸움을 하던 웨스트햄과 버밍엄이 이미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더비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강등이 확정되었었고 데니스 로는 뜨거운 경기장 분위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맨체스터에 있는 두 팀에서 그의 축구 경력을 보냈던 그에게 그 순간은 슬픈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 그 순간을 회상했던 데니스 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슬펐습니다. 저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년 동안 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도 위로할 수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팀 동료였던 로드니 마쉬도 그의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기억하였습니다.

 


                        1973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 후 항상 미소와 함께 했던 데니스 로
1973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 후 항상 미소와 함께 했던 데니스 로

 

“드레싱룸에서, 그는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골이 유나이티드를 강등으로 이끈 건 아니었지만 그의 기분을 좋지 않게 했던 오직 다른 한 경기였다고 나중에 말해주었습니다. 그전까지 유일하게 기분을 안 좋게 했던 경기는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경기였습니다.”

로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클럽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74년 월드컵 본선에 나간 후 프리시즌 경기에 나섰지만 8월에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데니스 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클럽 생활을 하며 총 600회 이상의 출전 경기 기록을 가졌으며 303 골을 넣는 기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가대표에서도 30골 이상을 넣으며 스코틀랜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잊고자 했던 그 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