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에서 수많은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이 되었으며, 조지 5세 왕의 방문에서부터 먼지가 되기까지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으로써 많은 희열과 슬픔이 깃든 장소였습니다.

1887 고튼FC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운영되고 있을 때였고 맨체스터 시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창단되기전까지 다른 명칭들로 구단을 지칭하였습니다.

당시 구단은 맨체스터 동쪽 지역에 구장이 있었지만 구단이 성장함에따라서 구장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이드 로드 호텔 근처에 있던 땅이 마침 가능해 보였고 땅주인에게 사용할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당시 땅은 철도회사 땅이었고 부동산 에이전트와 구단과의 협의 끝에 7개월 동안 단돈 10파운드에 땅을 빌리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근처에 있던 갤러웨이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새로운 땅에 지을 기본적인 자재를 공급해 주기로 하였으며 구단의 명칭은 새로운 지역에 맞게 아드윅 FC 바꾸게 되었습니다. 경기장에는 편의 시설이 많지 않았으며 선수들은 하이드 로드 호텔에서 경기 후에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드윅FC 새로운 구장을 얻을 있게 되었습니다.

1888년에 1,000명이 앉을 있는 스탠드가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경기장 내에서 주류를 판매할 있는 권리를 체스터 브루어리에 주면서 스폰서십 패키지를 판매할 있었습니다. 1892년에 리그에 참여하였지만 맨체스터 시티로 새롭게 창단되었던 1894년까지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 여러 문제 등을 안고 있었습니다.

하이드 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가 진행되었고 1896년에는 옷을 갈아입을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1898 새로운 스탠드가 만들어졌고 1904년에는 뉴캐슬 웬즈데이와의 FA 4강전이 열리며 4만명을 수용할 있는 경기장이 되었습니다.

1910년에는 3개의 스탠드에 지붕을 설치하며 35,000명의 팬들이 빗줄기로부터 피할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이드 로드 주변 환경과 접근 환경이 좋지 않았고 안전 문제로 연결될 있었습니다. 1913 선덜랜드와의 FA 경기에서는 41,000명의 팬들이 모일 것이라 예상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같아 보였습니다. 비록 당시 예상 수치를 높게 잡기도 하였지만 결국 많은 관중들로 인해 경기를 포기할 밖에 없었습니다.

1912년과 1914년에는 안전 문제를 위한 경기장 업그레이드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에서는 경기장이 300마리의 말들이 쉬는 장소로 변하면서 잠시 축구를 중단할 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1920년에는 조지 5 왕이 처음으로 런던이 아닌 지역의 축구 경기장으로 하이드 로드를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11월에 경기장은 폐쇄가 되었습니다. 큰 화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메인스탠드에 불이 났으며 여러 클럽 기록들이 부서졌고 클럽에 충실했던 개였던 Nell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구단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11 10일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구단과 관계된 많은 서적과 서류들이 소실되었습니다.”

화염은 메인 스탠드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Nell 목숨만을 잃었던 것은 아쉽지만 불행 다행이었습니다. 화재 원인은 담배꽁초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었으며 모닥불이나 폭죽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하이드로드에서 년을 보냈지만 위의 화재는 클럽이 다른 구장으로 옮기는데 빠르게 진행하게 해주었고 1923/24 메인 로드로 홈구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6년동안 홈구장으로 활용했던 하이드로드는 메인로드로 옮기자마자 철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