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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ITY DNA | 풋볼 핑크

Football Pink(이하 풋볼 핑크)는 ‘매치오브더데이’를 보는 것 만큼이나 인기가 많았으며 맨체스터 시티(와 유나이티드) 팬들의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의 풋볼 핑크를 필수적으로 읽어왔으며 맨체스터의 축구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연대기 형식으로 담아왔습니다.

토요일 오후 5:40분이 되면 많은 서포터즈들이 맨체스터 전역에서 뉴스 가판대에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매우 흔한 장면이었으며 줄을 팬들은 신문을 실은 차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보급되기 , 핑크가 보급되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으며 오늘날의 기준에 의하면 거의 구닥다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핑크의 인쇄, 출판, 보급 등은 매주 경기 종료 휘슬 이후 시간 내에 이뤄지는 매우 고단한 작업이었습니다.

대개 기자석에 앉아서 일을 하는 기자들은 유선 전화를 사용하여 타이핑하는 직원에게 신중하게 작성된 단어들을 작성하였고 이들은 핑크의 편집 팀에 최신 업데이트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는 MEN 인쇄기에서 작업을 거친 최종 신문들이 차량을 통해 도시 전역에 위치한 뉴스 가판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스포츠 라디오가 도래하기 전의 일이었으며 계속 되는 정보 속에서 이러한 일을 해낼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핑크는 맨체스터 시티와 유나이티드 팬들에게는 축구 소식을 접할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놀랍지 않게도 전쟁 시대에 이러한 방식은 호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전쟁 이후 인쇄된 맨체스터 이브닝 크로니클의 풋볼 핑크

 

풋볼핑크의 창간년도를 알기 위해서는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합니다. 맨체스터 이브닝 크로니클의 부분으로 출간됐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신문은 맨체스터 시티의 회장이었던 에드워드 헐튼 경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가 이브닝 크로니클과 합병한 이후 기존에 인기가 있었던 스포팅 핑크가 풋볼 핑크로 바뀌었으며 맨체스터 축구 문화 속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1993년 발행된 풋볼 핑크

 

동안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레전드라 불리는 기자들이 나열하는 단어, 콤마, 점자 하나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피터 가드너, 힌스와 같은 기자들의 경기 기사들은 서포터즈의 주말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우승에서부터 강등까지, 웸블리에서의 승리에서부터 FA컵의 분노까지 핑크풋볼은 맨체스터 시티의 흥망성쇠를 꾸준히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1990년대 중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빠르게 도입되면서 핑크 풋볼은 점점 외면되어졌습니다. 축구의 인기가 늘어가고 TV 시청에 대한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서 많은 경기들이 토요일 오후 3 경기가 아닌 다른 시간에 일어나게 됐습니다. 또한,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핑크 풋볼의 매력을 감소시켰습니다.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진행 상황과 기록을 보고 즐길 있는 다양한 정보의 과잉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핑크의 인기도는 줄어들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구매도 감소하였습니다.

2000 여름, 이브닝 뉴스는 핑크 풋볼을 선데이 핑크로 새롭게 브랜딩하기로 발표하였고 저녁 티타임이 아닌 일요일 아침에 신문을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2007 결국 선데이 핑크는 이상 발행되지 않았고 맨체스터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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